페더입니다.
물론 기억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어쨌든 다술로의 귀환입니다. 적어도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을 중단or완결하기 전까지는 남아있겠죠. 뭐, 아무튼 부활신고'ㅅ'/ 덧붙여, '마녀 찾아 삼만리'라고 하는 소설을 연재 시작했습니다. 제목이 유치해보이는 이유는 가제이기 때문입니다. 작명센스가 바닥나서[......] 제목과는 꽤나 딴판인 분위기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봐주시면 고맙겠어요>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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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쿠가 부른 버전. 이건 '밤푸딩'이라는 한국분(!)이 부르시고 니코동에 업로드하신 영상. ryo씨 신곡은 항상 나오자마자 체크하고 있었는데 요즘 알바다 뭐다 바쁘다보니 좀 소홀해졌네요'ㅅ'...... 아무튼 밤푸딩님 잘 부르시네;ㅅ; 1차 출처는 물론 니코동. 2차 출처는 엘라이스 님의 블로그(http://nyorong.egloo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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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듣고 있는 노래임다'ㅅ'
고무 버전 halyosy버전 고무 버전이 매우 마음에 드는근녀'ㅁ' 그리고 요건 합창 버전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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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에 묻어두었던 단편이, “용서해주실 건가요?” 나는 말했다. “아니. 용서하지 않아.”
까만 옷을 입은 젊은 장의사가 말했다. 인부들이 미리 파놓은 무덤터에 관을 끌어와 내려놓고 흙을 덮기 시작했다. 참석객이라고는 상주 하나뿐인 장례식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한 번, 한 번, 흙이 관을 덮을 때마다 툭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저 안에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후회하고 있을까. 죽은 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며 후회하지도 않는다. 상주가 하나뿐인 장례식이 제대로 거행될 리 없었다. 장의사는 건성으로 장례식을 끝마쳐 버리고는 인부들이 무덤을 대강 완성하자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산을 내려가 버렸다. 결국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물고 있는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실낱같이 희미하고 또 서글프다. 나는 막 완성된 무덤을 내려다보았다. 초라한 비석이 문지기처럼 그 앞에 서 있다. 어느새 하늘에는 황혼이 지고 있었다. 그녀는 예쁜 미소를 지을 줄 알았다. 조금만 즐거운 이야기를 들어도 순수하게 웃고, 조금만 기쁜 일이 있어도 그것을 감추지 못하고 또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웃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늦었군. 돌아갈까.”
는 중얼거렸다. 말은 허망하게 주변을 맴돌다가 사그라졌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붉고 검다.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증오했다. 나의 모든 세계를 산산이 부숴버린 그녀와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막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신청하러 오랜만에 학교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눈이 내린 다음날이었다. 휴일이었기에 캠퍼스의 대부분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있을 뿐 어떠한 발자국도 더럽힘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순결한 설원에 최초로 발자국을 찍는다는 것에―그 순결함의 상징을 최조로 범한다는 것에 어떠한 뒤틀린 황홀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다른 날에 찾아가도 되는 것을 굳이 눈이 온 다음날, 그것도 휴일에 찾아갔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본래 나는 그런 놈이었다. 복학신청을 하려 했으나 그쪽 관계자들까지 모두 휴일을 누리느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복학신청은 미뤄둬야 했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는 대신 입대 전 내가 가입했던 동호회의 회실에 가보았다. 물론 누군가가 있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동호회실에 아무도 없기를 기대했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공허를 조금 누리다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동호회실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그녀였다. 그녀는 창가쪽 맨 뒷자리에 앉아 간간히 창밖을 내다보며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인기척을 내지 않고 그녀의 뒤로 다가가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노트의 맨 윗줄은 「그는 누구 하나 더럽힌 적 없는 새하얀 설원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찍으며――」로 시작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기이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것은 마치 나와 같지 않은가. “……엣?” 그녀가 별안간 탄성을 질렀다. 뒤늦게 내 존재를 깨달은 듯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어, 아, 아앗……! 죄, 죄죄송합니다!” 태연히 묻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허둥대가 문득 깜짝 놀라며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이어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호, 혹시 읽으셨어요?” 그녀가 쓰고 있던 것은 소설이었다. 내가 캠퍼스에서 아무도 발자국을 찍지 않은 설원을 밟으며 황홀함을 느끼고 있었던 그 광경을 보고는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소설이라. 내가 가입한 동호회는 문학창작 동호회였다. 문학창작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실력은 없는 몇몇 학생들이 모여 취미 겸으로 만든 동호회였다. 그랬기에 대단찮은 목적도 없었다. 동호회원들의 목적이라 봤자 가장 꿈이 큰 녀석이 개인지를 출판하는 것이었다. 다만 내게는 그런 녀석들과는 다른, 글을 써야 할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시답잖고, 소소하며, 흐릿하고, 또 슬픈 이유였다. 그 때문에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설원을 걷는 내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그녀 또한 문학창작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군대에 가 있는 사이 가입한 것이겠지. 기묘한 인연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우연히 들렀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그녀는 자기가 쓴 소설의 주인공을 눈앞에서 마주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지도 모르지. 다음날 다시 복학신청을 하고, 1주일 뒤 학교로 나갔다. 그리고 근 2년 만에 듣는 환경공학 수업에서 나는 또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똑똑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그런 식의 순수한 인사를 받은 것이 과연 얼마 만이었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다. 그 뒤 나와 그녀의 관계는 별 탈 없이 진전되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는 첫눈에 내게 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은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설원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서 있는 모습이었으니. 나 또한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동기 이상, 연인 미만이던 미묘한 관계에 확정선을 그은 것은 그녀였다. 크리스마스, 일요일. 그녀가 전화로 나를 불렀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간 내게 그녀는 고백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리 말하고 그녀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문득 그녀라면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지켜보던 그녀의 친구들이 부러움과 야유 섞인 축하를 해주는 가운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 뒤 얼마간 우리는 평범한 연인의 길을 걸었다. 서로 위해주고, 항상 붙어 다니고, 연인 없는 사람들이 보면 분노를 느낄 정도로 알콩달콩한 날을 보냈다.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나도 그녀를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문학창작 동호회를 통해 엮이게 된 인연이었으므로 그녀와 내가 나누는 대화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글쓰기에 관련된 일이었다. 우리들은 틈만 나면 글을 써서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주로 문장의 호흡이 짧고 쓸데없는 묘사를 최대한 배제하는 스타일로, 단편을 잘 썼다. 반면 그녀는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스타일로, 장편에 특화된 글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주로 1주일에 하나 꼴로 단편을 완성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1주일동안 쓴 분량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녀가 소설을 쓰기 위해 들고 다니는 노트는 두 권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하늘색 표지의 노트뿐, 다른 하나의 노트는 내가 부탁을 해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 노트에 대한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어느 날인가 그녀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그 흰 표지의 노트를 내 옆자리에 그냥 놓고 강의실을 나간 적이 있었다. 문득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노트를 펼쳐보았다. 그녀에 대한 믿음도. 그녀를 향하던 사랑도. 모든 것은 그때 부서졌다. 그 두툼한 노트에 적힌 것은 내가 처음 펜을 잡은 그 날부터 지금껏 써온 모든 글들이었다. 본래 나는 내 글을 출판하려 했다. 거기에는 특별하지만 사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말했었다. 이유까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바로 몇 주 전, 원고를 투고하기 위해 여지껏 써온 글들을 찾던 나는 내가 쓴 글을 모아두었던 노트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물었으나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집은 물론이고 온 학교와 내가 자주 다니는 술집과 포장마차까지 모조리 찾았으나 결국 노트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아, 공들여 써온 내 글이. 목표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나는 좌절했다. 그리고 그 글들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노트 맨 뒷부분에는 일기인 듯 보이는 간략한 메모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1월 11일. 월. 「눈을 보는 눈」, 「발 없는 남자」외 18개의 단편을 모아 한 권으로 출판하기로 삼양 출판사와 계약. 특별한 일이 없으면 4월 초에는 출간될 것 같다.》 일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눈을 보는 눈과 발 없는 남자는 내가 쓴 단편소설들의 제목 중 하나였다. 나는 뒷덜미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그녀가, 내 글을 가져가, 자기 이름으로, 출판을 계약한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캠퍼스를 뒤져 그녀를 찾아 노트를 돌려주었다. 그녀는 그 노트를 받아들고는 갑자기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버렸다. 내 세계를 부숴버린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특별히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으나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도 그녀와 몇 번인가 함께 자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뿐이었다. 이미 그녀는 내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나는 그녀를 증오했다. 분명하게 증오했다.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그 천진하고 순수한 미소는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그녀의 사이는 급속도로 멀어졌다. 몸은 가까웠으나 그녀의 마음은 내게 더 이상 닿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다. 서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의 양이 줄어들고, 휴대폰 통화시간이 줄어들었다. 학교 이외의 곳에서 따로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런 식으로 한 달이 지나자, 결국 그녀와 나를 잇던 끈은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그녀는 내게 물었다. “저를 용서해주실 건가요?” 나는 말했다. “아니. 용서하지 않아.” 그렇게 우리는 영영 헤어졌고, 그리고 그녀와 완전히 연락을 끊은 지 정확히 2주 뒤, 나는 친한 친구로부터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녀의 집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모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나 자매는 없다고 했다. 나는 과거 그녀에게서 받았던 여벌의 열쇠로 굳게 잠긴 그녀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은 텅 비어있었다. 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이 을씨년스러운 것이 정말로 죽은 자의 집처럼 느껴졌다. 방에 들어서서, 그녀의 죽음을 실감하며 내가 처음 느낀 것은 의문이었다. 어째서 죽었을까? 그 뒤로 느낀 것은 놀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밑바닥 없는 깊고 시커먼 상실감이었다. 나는 그녀의 방을 샅샅이 뒤졌으나 그녀에 방에서 발견된 것은 하늘색 표지의 노트뿐이었다. 정작 나와야 할 흰 표지의 노트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방 한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석양이 하늘을 물들여가고 있었다. 허망했다. 그녀는 죽어서까지,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일말의 희망마저 사정없이 짓밟아버렸다. 아아. 그 모든 것이, 그저 한줌 꿈인 것이다.
싸늘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아침. 나는 매일 아침 그녀의 얼굴을 본다. 상체를 일으키면 흐릿한 시야에 선명하게 어른거리는 그 얼굴은 미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환영은 내게 묻는다. ‘용서해주실 건가요?’ 나 또한 웃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아.”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제대로 씻지도 않고 곧바로 베란다로 향한다. 나는 베란다 구석에 놓여있는 담뱃갑을 집어 들고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피어오르는 탁한 잿빛연기. 그 사이로 어리는 그녀의 얼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방 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베란다에 놓인 재떨이에 비벼 끈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 사이에 파묻힌 휴대폰을 집어 들어 폴더를 연다. “여보세요.” 지난 달 휴학신청을 한 뒤로 딱 한 달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대꾸했다. “그래.” 녀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물론 학교도 안 나오고 겨우 알바 두어 개나 돌리는 백수니까 시간이야 남아나겠지? 그럼 나와라. 너희 집에서 가까운 데, 바벵이 알지? 바비큐 맛있는 호프집. 그리로 나와.] 나는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반문했다. “왜.” 서진이라는 단어에 휴대폰을 닫아버릴 뻔했다. 나는 가까스로 스스로를 자제하며 조금 뒤늦게 대꾸했다. “……알았어. 조금 기다려.” 나는 휴대폰을 내던지듯 침대 위에 놓은 후 곧바로 욕실로 갔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다시 방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는다. 베란다를 통해 보니 날씨가 눈이나 비가 쏟아질 듯 어두웠다. 나는 옷을 두껍게 입고 밖으로 나갔다. “여엇. 여기다.” 바벵이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종현이가 손을 들어올렸다. 나는 말없이 녀석에게로 걸어가 그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왜 불렀어.” 녀석은 이유를 말하는 대신 옆자리에 놓인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녀석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턱하니 올려놓았다. 하얀 바탕에, 한 가운데에는 햇빛이 그려진 표지판으로 표지가 채워진 책이었다. “뭐야?” 나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자세히 읽어봐.” 나는 녀석이 내려놓은 책을 집어 들었다. 표지 위쪽에는 흘림체로 「태양 표지판」이라는 제목이 간소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민현수.」 “……어?”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그것은 내 이름이었다. “놀랐냐?” 나는 황급히 책을 펼쳐보았다. 책의 내용은 총 18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목차를 통해 각 소설들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눈을 보는 눈」「왕을 찾는 자전거」「오페라 웨이브」「태양 표지판」, 모두 내가 썼던 소설의 제목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책이 있는 거지? 나는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종현이를 바라보았다. “서진이 말이다.” 그가 컵을 입가에 대며 꺼낸 말은, 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그녀에 대한 것이었다. “네가 왜 글을 쓰는지 알고 있었다.”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눈앞이 한순간 깜깜해졌다. 청각이 멍멍하고 어쩐지 의식이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까마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으며 간신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 서진이 녀석이 나한테 물었거든.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고.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도 녀석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통에. 너도 알잖냐. 그 녀석이 한 번 마음먹은 일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거.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이 말해준 거지.” 내가 글을 쓰려 하는 이유. 내가 책을 내려 하는 이유. 그것은 동생 때문이었다. 내게는 투병 중인 동생이 있다. 폐렴 말기다. 요즘 같은 세상에 폐렴이 말기까지 가서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니 어처구니없지만 현실이 그랬다. 일찍 부모를 여읜 우리들에게는 병원에서 정밀검사와 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 단순한 감기인 줄 알고, 놔두면 나으리라 생각해 방치한 것이 번지고 번지고 번져, 결국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해진 것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녀석이 병원에 입원하기 몇 달 전이었다. 녀석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는 내가 책을 출판하는 것을 보고 싶다며 꼭 성공해서 책을 출판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의 말에 그러겠다며 약속했고. 그리고 바로 몇 달 뒤에 녀석은 폐렴이 말기까지 악화되어 황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돈을 벌어 치료비와 입원비를 내는 것 말고,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내가 녀석과 했던 약속이었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는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북돋아주기 위해서. ――그런데 그게. 내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진이는 어떻게 하면 널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지. 그 녀석은 너를 진심으로 좋아했으니까. 하여간 복 받은 놈. 그런 애가 나한테는 안 오고 너 같은 석상한테 꼬이다니 세기의 미스터리다. 아무튼, 한참 고민한 서진이가 생각해낸 게 그거야. 마침 서진이의 친척 중에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야. 서진이는 너한테는 비밀로 하고 그 출판사에 네 이름으로 네 소설들을 출판해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던 거지. 너도 봤겠지? 그 흰 표지 노트. 그게 서진이 녀석이 그걸 위해 모아놓은 거야. 네가 아끼던 공책을 어쩔 수 없이 비밀로 가져와야 해서 꽤나 많이 미안해하더군.” 오늘이 며칠이지? 4월. 4월 14일이다. 그녀의 흰 노트 뒷부분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4월 초에는 출간될 것 같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책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으로 나올 책이 아니라 나를 위한 책이었단 말인가? 아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입을 벌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손에 들린 책을―내 이름 석 자가 똑똑히 박혀있는 그 책을 멍청히 내려다보았다. 종현이가 앞에서 뭐라 더 말했으나 나는 듣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이야기를 마친 종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 가보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틈이 없었다. 책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죽은 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된 내가 처음 한 생각은 원망이었다. 어째서? 내가 공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돌려줬을 때, 그녀가 종현이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내게 들려줬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 대한 것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사이가 멀어지는 일 따위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어쩌면, 그녀가 죽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미안하다고만 했고, 용서해달라고만 했다. 그녀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증오에 휩쌓인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유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아. 그렇구나. 순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녀가 진실을 말해도, 나는 그것을 변명으로밖에 듣지 않고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내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그녀에게 먼저 진실을 물어올 날이 있을 거라 믿으며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헛되이 나와 그녀의 사이는 멀어졌고, 결국 그녀는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외롭게 죽고 말았다. ‘용서해주실 건가요?’ 그 조심스런, 미안함을 품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진실을 알게 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가게를 빠져나와 곧장 그녀의 산소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기 시작한 뒤였다. 숲속의 어둠은 이르게 찾아온다. 산속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나는 숨이 턱까지 와 닿는 것도 무시하고 그저 전속력으로 산을 달려 올라갔다. 미끄러지고, 부딪치고 긁히고, 몇 번인가 쓰러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아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나는 그녀의 산소 앞에 다다랐다. 이미 내 모습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옷이 찢어지고, 여기저기가 긁히고 깨진 상처로 가득했다. 그래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잠시 거칠어진 호흡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골랐다. 심호흡. 조금 지나자 격하던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산소 앞에, 그 초라한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떨리는 목소리로 몇 달 동안이나 거부해왔던 그 이름을 불렀다. “서진아.” 내 손에 들린 것은 그녀가 나를 위해 만든 책. 그것은 나를 위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녀의 비석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서진아.”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 안개처럼 나타난 그녀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환영, 그러나 환영일지언정 그녀는 내 앞에 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조심스런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았다. 미소 짓지 않고 내게 물었다. ‘용서해주실 건가요?’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뛰어올라오느라 힘에 부쳐서 그러나 했으나 아니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눈물이 눈에 가득 고여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이내 뜨거운 눈물방울이 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 눈물은 이미 죽어버린 그녀에 대한 나의 사죄였다. 턱 끝에 모여, 고이다가, 이내 비석 앞에 내려놓은 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내 사죄는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젠 알겠어. 용서해줄게. 그리고 미안해.” 그 대답을 들으며, 그녀는 그 날 이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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