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뉴문을 봤습니다. 네. 다른 사진은 중요하지 않아요. 에드워드를 사랑해마지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머리를 자르고 웃통을 멋은 제이콥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걸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젭알 꿈에 나와서 저 포즈 한 번만 해줘!! ㅠㅠㅠㅠㅠㅠㅠ *이상 뉴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女의 짤막한 헛소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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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피아에서 했던 단편제에 올렸던 글입니다. 물속에서 숨 쉬다.
백호가 다섯 살 때, 그의 장래희망은 ‘물고기’였다.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백호가 나이에 걸맞게 어리고 순수한 것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백호는 사람은 물고기가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고래가 될까 금붕어가 될까 고민하던 백호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해녀, 아니, 해남이 되기로 했다. 산소통을 매달아야하고 물고기만큼 오래 자유롭지는 않아도 어쨌든 물속에서 숨을 쉬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이도 중학생 무렵 깨어졌다. 백호는 물과는 완전 상극이었다. 물에 뜨지도 않고 백날 허우적거려도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게다가 수영장 물은 어찌나 차가운지 10분만 있노라면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이가 딱딱 부딪혔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공포심이 몰려왔고 수경을 쓰고도 물속에서 눈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3개월 과정의 수영 강습을 신청하고 백호는 단 세 번 만에 포기했다.
이름 탓이다. 고양이 과인 호랑이(虎)따위로 이름을 지었으니 물과 어울릴 리가 없다. 그렇게 부모님께 비난 섞인 항의를 했다가 흠씬 얻어맞았다. 백호도 백호의 부모도 억울했다.
자신은 왜 물과 상극인 주제에 왜 그토록 물을 갈망하는 걸까. 백호에겐 세상의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도 더 풀기 힘든 문젯거리였다.
반올림을 하면 서른이 되는 나이에 이르자 백호도 자신의 모순에 무뎌졌다. 대학 전공은 철학이었고 동아리는 등산부를 들었으며 군대는 공군으로 다녀왔다. 신입생 때 계곡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일 이래로 단 한 번도 깊은 물과 접촉할 일은 없었다. 그것은 때때로 백호에게 심적 갈증을 불러왔지만 적어도 육적으론 매우 안전하고 다행스런 일들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심적으로도 굉장히 평온한 날이었다. 그래서 백호는 자신의 욕망이 이렇게 갑자기 발동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2:2 미팅을 하자고 친구 신세명이 말을 꺼낼 때만 해도 이 나이에 소개팅도 아니고 무슨 미팅이냐며 웃었다. 하지만 상대 여자를 보는 순간, 아니 그 중 한 명을 보는 순간 백호는 자리를 박차고 싶은 걸 참느라 손등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다, 라는 단순한 논리였으면 괜찮았을지 모른다. 키스하고 싶다거나 덮치고 싶다는 욕정이었어도 괜찮았을 거다. 적어도 그건 남자의 본능이라고 변명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백호가 느낀 욕망은 ‘당장 물에 뛰어들고 싶다.’였다. 여자에게서 물 냄새가 너무 짙게 풍겨 나왔다. 누가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할법한 일로 백호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이해란이라고 해요. 스물한 살이고 부산에서 왔어요.”
사투리라곤 털끝만큼도 쓰지 않는 그 여자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곤 싱긋 웃었다. 백호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옆에서 세명이 물었다.
“어? 근데 사투리 안 쓰시네요?”
“네. 실은 서울 태생인데 중3때 내려가게 됐거든요. 부산 친구들이랑은 쓰는데 평소엔 안 써요.”
“아, 부모님 일 때문에?”
세명의 질문에 해란이 곤란한 미소를 띠었다. 안 좋은 질문이었나 싶어 취소하려는데 그녀의 친구 영은이 대신 답했다.
“물이 좋아서래요. 가족들 두고 혼자 내려갔다니까요? 가까운 바다도 있는데 왜 하필 부산인지.”
“제주도까지 안 간 게 어디야. 아니면 일본이라거나.”
“잘나셨지, 이해란.”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며 백호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백호만큼은 아니지만 세명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너랑 좀 비슷한데?”
세명이 백호를 돌아보며 멍청하게 물었다. 해란과 영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빠도 물 좋아해요?”
백호는 조금 다르다고 대답해주려 했지만 세명이 조금 빨랐다.
“이 녀석은 맥주병에다 물 공포증이에요.”
“네?”
“그런 주제에 물이 아니라 물속을 좋아한답니다.”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해 해란과 영은이 멍해진 틈을 타 백호가 말했다.
“달라.”
해란의 시선이 다시 백호에게 옮겨졌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 듯 했다. 하지만 해란의 시선을 받은 순간 백호는 다시 물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이를 악물었다.
“뭐가 달라요?”
해란이 입 밖으로 꺼내 물었다. 백호는 자신을 추스르며 천천히 나지막이 말했다.
“물속에서 숨 쉬는 게 꿈이거든.”
초면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고 묘하게 풍기는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란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백호를 훑어보더니 물었다.
“스쿠버다이빙 같은 거요?”
“못해.”
“왜요? 무서워서?”
“응.”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자 해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은은 이제 완벽히 백호를 별종 보듯 하고 있었다.
이후에 세명이 백호의 어린 시절 장래희망을 떠들어대고 어쩌다보니 대화 소재가 물고기로 넘어가버려 미팅 자리는 수족관으로 옮겨졌다. 즉흥적인 결정이었지만 다행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백호만 빼고.
“표정이 안 좋네요? 수족관도 무서워해요?”
세명과 영은이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해란이 물었다. 그 정도로 백호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그 정도는 아냐.”
“근데 왜 그래요?”
너 때문에.
백호는 입술만 달싹였다.
“오빠는 왜 그런 꿈을 갖게 됐어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으면 맥주병 같은 거 극복하려고 노력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백호는 이런 관심이 전혀 반갑지도 고맙지도 않았다. 해란이 하는 말은 이미 자기 스스로도 수백 번 수천 번 되뇌고 또 그만큼 좌절해야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백호는 그 정답을 짧게 말해주었다.
“어쩌면 내 최종 꿈은 익사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해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호는 익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마지막 숨은 어쨌든 물속에서 쉬게 되는 거니까. 언제부턴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백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이마를 닦아주려는 듯 해란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백호는 한계에 달했다. 그는 해란의 손을 뿌리치듯 물러섰다.
“역시 네 말이 맞아. 수족관도 무서운가봐. 아니, 무서워. 가야겠어.”
“네? 어, 오빠!”
백호는 얼빠진 해란을 그대로 두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정말 예의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도 없었다. 자신이 수족관 유리를 깨뜨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럴 때 백호가 갈 수 있는 곳은 딱 한군데였다.
「이 새꺄! 너 어디야!」
“……목욕탕에서 막 나왔어.”
목욕탕. 백호가 유일하게 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숨 쉴 수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그곳 물은 따뜻하고 얕으니까. 냉탕으로 눈 돌리지 않는 한 죽을 걱정은 없으니까.
「뭐? 이 미친 새끼! 그대로 가면 어떡해! 내가 얼마나 난처했는지 아냐?!」
“미안. 진짜 미안하다.”
「뭐가 문제냐? 너 진짜 수족관도 무서워하냐? 수족관 나가서 목욕탕이라니, 대체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그냥 갑자기…….”
「제대로 말해!」
어지간해선 화내지 않는 세명이 연신 버럭 외칠 정도니 정말 백호가 잘못하긴 잘못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얌전하게 답했다.
“정신이 어떻게 됐었나봐.”
수화기 너머로 크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가 지나고 세명이 감정 정리를 했는지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미팅, 별로였냐?」
“그런 게 아냐.”
「둘 다 괜찮았잖아. 맘에 드는 애 없었어?」
“중간에 뛰쳐나왔는데 맘에 들어서 어쩌게. 너나 잘해봐라.”
해란과 영은은 예쁘고 늘씬했다. 하지만 함께 있었던 시간이 괴로웠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 때문에 백호는 둘 중 누구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게 마음대로 되겠느냐마는.
「진짜지?」
“응.”
재차 확인하는 게 조금 이상했다. 왠지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이 되듯 세명은 닷새를 못 넘기고 해란과 교제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백호도 가끔 해란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회수가 더해질수록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 앞에만 서면 물이 간절했다. 결국 백호는 노골적으로 그 커플을 피해 다니게 되었다. 두 사람의 100일이 다가올 무렵 달은 8월이 되었고 때는 피서 철이었다. 그리고 백호는 아주 의외의 제안을 받았다.
“해란이가 친구를 데려온대. 쌍쌍으로 동해에 가자. 1박 2일.”
그 말은 가지 않을래? 하고 묻는 게 아니라 제발 가줘. 라고 애원하는 투였다. 백호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세명이 설명했다.
“해란이가 아무래도 어리잖아. 둘이 가는 건 싫대. ‘오빠 믿지’가 안 통한다니까.”
“아아. 이해했다. 어지간히 좋은가봐? 너 원래 플라토닉이랑은 거리가 멀잖아.”
“닥쳐. 갈 거야, 말 거야?”
세명이 발끈했다. 백호는 이 건수를 제대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비용은 네가 대는 거지?”
“이 날도둑…….”
“그래? 요즘 강우가 한가하다던데.”
강우는 양다리는 기본에 친구 애인은 물론 형제 애인까지도 뺏을 놈이었다. 친구로는 잘 지내고 있지만 남자로는 최악이라 생각했고 세명은 아예 강우 앞에선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강우에게 전화할 듯 백호가 핸드폰을 꺼내들자 세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덥석 손을 잡았다.
“낸다. 차비, 식비, 간식비에 기념품까지 사주마.”
백호는 하하 웃으며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세명의 손에 쥐어주었다.
“보태 써라.”
더욱 일그러지는 세명의 얼굴. 백호는 정말 오랜만에 유쾌해졌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갈 곳은 동해 바다였다. 그리고 함께 가는 사람은 물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란이었다. 백호는 서울역에서 세명, 해란,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가희를 만나는 순간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해란의 질문에 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고작이었다. 세명이 좀 더 다정하게 못하냐는 듯 눈치를 줬지만 백호는 싹 무시했다. 녀석은 같이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바다에 도착해도 절대 물에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백호는 다짐했다. 이 상황에 물을 가까이 했다간 자신을 절제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랬다간 이 여행이 생애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드디어 꿈을 이루고 죽는 것이다.
해란은 정말 물을 좋아했다. 그녀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바다로 들어가 두 시간이 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명이 먼저 지쳐 파라솔 아래 드러누웠다.
“네 여자친구 짱이다.”
“후후. 부럽냐?”
백호는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니라 네 여자친구가 부러워.”
백호가 물에 들어가지 않으니 덩달아 가희도 무릎까지만 담갔다가 쭉 해변에 있었다. 가희로써도 백호와 해란 사이에 끼어들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세명이 가희에게 말했다.
“가서 우리 해란이랑 좀 놀아주라. 이 돌땡이는 나한테 맡기고.”
안 그래도 심심했던지 가희는 사양하지 않고 해란에게 갔다. 여자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세명이 백호에게 말했다.
“이따 밤에 분위기 좀 잡아줘.”
백호는 딱히 무슨 분위기냐고 묻지 않으며 답했다.
“나도 눈치란 게 있다. 술이나 잔뜩 사서 들어가자.”
세명이 슬쩍 웃었고 백호는 바다로 눈을 돌렸다. 물속, 햇볕 아래의 두 여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특히 해란은 더 빛이 났다. 그녀의 몸은 마치 물을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물에 대한 욕망이 일었다. 그래서 그는 바다에서 눈을 떼 하늘을 쳐다봤다. 파란 하늘. 안타깝게도 그건 물을 닮아있었다.
해란의 해수욕은 허기 때문에 겨우 끝이 났다. 배만 안 고팠다면 그녀는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흠뻑 물을 즐겼기 때문일까 해란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즐거워보였다. 뺨의 홍조는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저렇게 흥분한 상태를 보니 오늘 세명의 계획은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모든 일은 확률대로 일어나진 않는다. 큰방에서 술판을 벌였을 때만 해도 해란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문제는 백호와 가희가 자리를 비켜준 지 10여분 뒤에 일어났다. 처음엔 해란의 외침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 세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백호와 가희가 문 앞을 서성이며 들어가서 말려야하나 그냥 둬야하나 고민하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해란이 나왔다.
“따라오지 마!”
쾅!
가희는 현관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뒤이어 세명이 피곤한 얼굴로 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백호가 물었다. 세명은 화가 났다기보단 지친 듯 했다.
“네가 좀 따라가 줄래? 내가 가면 또 싸울 것 같다. 밤늦게 여자 혼자는 좀 그렇잖아.”
앞뒤 사정이 궁금했지만 백호는 세명의 말대로 해란을 뒤쫓아 나갔다. 어디까지나 여자 혼자 밤길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해서다. 특히 휴가지의 밤은 더 그렇다.
해란을 따라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백호는 굳이 그녀를 불러 세우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 방향은 해안가를 향하고 있었다. 밤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느라 순간 해란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계속 한 방향으로 왔으니까, 백호는 해안을 향해 뛰듯이 걸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밤바다엔 쌍쌍의 커플로 바글바글해 사람을 찾는 게 너무 힘들었다.
눈이 아니라 냄새로 찾아야 해. 누가 들으면 호랑이가 아니라 개였냐고 웃을 법했지만 백호는 필사적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세명인지 해란인지 물 냄새인지.
결국 백호는 해란을 찾았다.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해란을. 해안가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건 자살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아닌가!
“미친!”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순간 백호는 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가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겨우 백일 된 남자친구와 싸웠다고 자살할 리 없다는 것과 해란은 물놀이를 과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겠지만, 이 순간 백호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야! 이해란!”
목만 빠끔히 물 밖으로 나온 해란이 뒤로 돌았다. 그것에 만족해 어서 나오란 말을 외치려는 찰나, 발아래가 휑해졌다. 몸이 쑥 가라앉았다.
“읍?!”
동해의 단점. 물이 갑자기 깊어진다.
백호는 해란이 계속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헤엄치는 중이었다. 자유영 배영 같은 정식 수영이 아니라 그냥 팔다리를 살살 저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해란의 실력을 따라잡기에 백호는 물과 너무 친하지 못했다.
“어푸!”
역시 오는 게 아니었다. 아직 죽기엔 젊은데. 빠졌다고 생각한지 10초 만에 백호는 몸이 뻣뻣이 굳어져오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백호만큼이나 물에 빨리 가라앉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분명 해안 가까운 곳이니 조금만 움직이면 발이 닿을 텐데 극악하게도 백호는 점점 해안과 멀어지고 있었다. 눈앞이 깜깜하고 머릿속이 하얗고 몸에 힘이 빠졌다.
그때 물과 다른 물 냄새가 확 다가왔다. 짙은 물의 향.
「눈 떠요.」
이젠 환청까지. 백호는 역시 이 여행이 내 삶의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나쁘지 않다. 익사한 시체는 보기 흉하겠지만 본인 시체를 볼 것도 아니니까. 물속에서 죽는구나. 백호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유추할 새도 없이 다시 환청이 들렸다.
「숨 쉬어요.」
숨? 좋아. 쉬지. 물속에서 숨 쉬는 건 백호의 오랜 꿈이었다. 폐에 물이 가득 찬대도 숨 한 번 못 쉬어보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
백호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깊이 내쉬었다.
후- 하-
「잘 했어요. 이제 눈 떠요.」
그 말이 마치 명령같이 들렸다. 백호는 눈을 떴다. 바로 앞에 해란의 얼굴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물에 나부껴 여신처럼 보였다. 싱긋 웃는 해란은 방금까지 화났던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 미소가 고정 화면으로 남아 백호는 잠시 넋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해안에 앉아있었다. 무슨 일인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백호도 해란도 멀쩡해보이자 흥미를 잃고 다시 흩어졌다. 백호는 흥미를 잃지 않았다. 그는 해란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며 물었다.
“숨을…… 쉬었어? 내가? 물속에서?”
백호는 자신의 입술을 더듬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너, 인어냐?”
해란은 두 다리로 서 있었고 손발 어디에도 물갈퀴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해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전 말을 하잖아요.”
인어가 사람이 되는 건 목소리를 잃었을 때나 가능한 법이다.
“용왕의 딸이라거나?”
“궁금한 게 내가 누구인지에요, 내가 어떻게 물속에서 숨을 쉬는 지에요?”
둘 다다. 하지만 백호는 해란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그는 해란이 싫어하는 짓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숙소로 돌아오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백호는 작은 사고로 말을 무마시킬 수 있었고 세명과 해란은 화해했다. 방은 남녀가 나눠썼다. 결국 최종 승자는 세명 쪽도 백호 쪽도 해란이었다.
다음 날 다시 한 번 바다로 나간 백호는 충분히 망설인 다음 물로 들어갔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백호는 짠물을 열 바가지쯤 마신 다음 세명에게 질질 끌려 해안으로 나왔다. 어젯밤의 일은 꿈이었을까? 백호는 자괴감에 젖어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었다.
“바보. 그 효과는 10분도 못 가요.”
백호가 벌떡 고개를 쳐들었다. 그 격렬함에 해란이 살짝 놀란 듯 했다. 몇 초간 눈을 마주보다 백호가 애원하듯 말했다.
“한 번만 더……. 응?”
“그건 어쨌든 키스 비슷한 건데요.”
“제발. 딱 한 번만.”
“전 세명 오빠랑 사겨요.”
그렇다면 왜 내 눈앞에 나타났어. 왜 어젠 키스했어. 어째서 물속에서 숨 쉬게 한 거야. 그냥 콱 죽게 내버려두지! 백호는 눈빛으로 수만 가지 질문과 비난을 퍼부었다. 해란이 손으로 이마를 짚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세명과 가희의 시선을 확인한 뒤 몸을 숙였다.
후-
쪽 하는 느낌보단 숨을 내쉬는 것과 비슷했다. 백호는 눈을 뜬 채 입맞춤을 받았다. 해란도 딱히 눈을 감지 않았다. 마치 그 키스가 키스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듯이. 그녀의 강렬한 향에 백호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물에 잠긴 느낌이었다. 1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명심해요. 10분이에요.”
해란은 바다 반대쪽으로 멀어졌다. 백호는 얼른 일어나 바다로 뛰어갔다. 하지만 젖은 모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백호는 돌아서서 눈으로 해란을 찾았다. 그녀는 세명의 옆에 있었다. 뭔가 기쁜 듯 환히 웃으며.
1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해란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백호는 자는 척 하며 그 시선을 피했다. 척 하다가 진짜로 잠이 들어 눈을 뜨니 서울이었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움직이는데 어느 광고판인가 새파란 바탕에 물고기가 노닐고 있었다.
백호는 돌아서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익숙한 번호가 찍혀지며 곧 세명이 전화를 받았다.
「왜?」
“어디냐?”
「지하철역인데. 해란이 데려다 주려고.」
“꼼짝 말고 기다려.”
뭐? 하고 묻는 세명을 무시한 채 전화를 끊고 미친 듯이 달렸다. 굳이 정확한 위치를 묻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백호가 해란을 찾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뭐야, 이 자식아. 놓고 간 거 있어?”
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세명.”
“그래.”
“내 말이 끝난 다음에, 날 반쯤 죽여도 좋아.”
“…….”
미간을 접는 세명을 두고 백호는 해란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곤 한 자 한 자 나직이 하지만 힘 있게 말했다.
“네가 좋아.”
한 3초 쯤 뒤에 반응이 왔다. 세명이 주먹을 불끈 쥔 것이다. 하지만 해란이 막아서는 바람에 날릴 타이밍은 놓치고 말았다. 해란이 말했다.
“‘내가’ 좋은 게 아니잖아요.”
“아니. ‘네가’ 좋아. 너와 있으면 물 밖에 있어도 물속에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네가 필요해. 인어든 용왕이든 설령 물의 정령이래도 상관없어. 네가 없으면 난 죽어버릴 거야. 숨을 못 쉬어 죽을 거라고.”
해란의 입 꼬리가 씰룩거렸다. 웃는지 우는지 판단하기 힘든 얼굴로 그녀는 세명을 돌아봤다. 그 시선이 싫었다. 자신이 아닌 친구를 보는 해란의 눈을 가리고 싶었다. 백호는 그대로 해란의 얼굴을 당겨 키스했다. 지하철 한복판에서 친구를 세워두고 그 친구의 여자친구와, 라는 상황 따위는 뇌리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몸을 뒤틀던 해란이 얌전해지고 백호가 입술을 뗐다. 그러자 이번엔 해란 쪽에서 다시 키스를 해왔다. 한 용감한 노인이 둘을 떼어 말리기까지 공개 키스는 계속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자 세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백호의 얼굴에서 죄책감을 읽은 해란이 말했다.
“사실 세명 오빠랑은 어젯밤에 헤어졌어요. 난 내 두근거림이 세명 오빠 때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이젠 알아요. 오빠 옆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해란은 활짝 웃으며 백호의 손을 잡았다.
“난 오빠의 물이잖아요.”
백호 역시 웃으며 손에 힘을 더했다.
“아니. 넌 내 숨이야.”
물속에서 숨 쉬다.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 = = 글자수 제한이 1만자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쓰느라고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다 쓰고 보니까 1만1천자 정도여서 잘라내느라고 힘들었어요. 원래는 연무지회에서 하던 단편제여서 여름에 써 두었었는데 뒤늦게 문피아로 옮겨가고 하면서 겨울에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네요. 어쩐지 글 쓰던 카페가 엄청이도 춥더라니...(응?;;) 로맨스에 심취해 있을 때 쓴 것이라.. 어찌보면 제 글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만, (형님 안나오는 글은 처음이었단 말이지요....;;;) 앞으로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생각합니다. 지금 연재하는 흑색의 루비를 마무리 짓고 나면 로맨스 판타지를 쓰고 싶어요. 여자 주인공도 다시 한 번 써보고 싶구요. (그렇다고 천재공주님 투를 쓰겠다는 건 아닙니다.) 사실 단편제 용으로 한 편을 더 썼었는데.. 연무지회에는 올렸다가 문피아에서 할 땐 올리지 않았습니다. 왠지 급하게 쓴 느낌도 났고 해서요. 나중에 기분 내키는 날이 오면(;) 블로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1월의 마지막날이자 2010년을 한 달 앞둔 날이네요. 남은 2009년의 한 달, 보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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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포스팅을 해볼까 하니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근래 홀딱 반한 작가 한 분을 소개합니다~ 영화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어쩐지 전 소설이 더 끌리더군요. 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 브레이킹 던 요 뱀파이어시리즈(?)!! 사람과 뱀파이어 사이의 로맨스이지요. 읽으시면 다들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미칠지도 모릅니다! 여주인공이 4편 브레이킹 던에서 뱀파이어가 되는데, 뱀파이어가 되고 눈 떠서 첫 적응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나도나도;;ㅂ;;) 판타지라기 보단 로맨스로 분류된다는 말에 읽기 전에 조금 불안한 면도 있었지만 오우.. 한권 한권 넘어갈때마다 빨리 읽고 싶다는 다급함과 앞으로 읽을 양이 줄어든다는 서글픔으로 허우적허우적 거렸답니다. ;ㅂ; 줄거리 적는 건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쯤에서 심호흡...(..) ![]() ![]() ![]() ![]() 트와일라잇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와중, 이 작가님의 책이 최근 또 나왔다는 희소식을 접했습니다~ ![]() 이름하야 호스트! .......여자 꼬시는 그 호스트 아닙니다.... 호스트에 기생생물의 숙주- 뭐 그런 뜻이 있더군요. 판타지라기보단 SF라 불릴 장르지만 역시 기본은 로맨스에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기생체(?)가 숙주(?)에 기생했는데 사라져야 할 숙주가 남아 기생체를 막 괴롭힙니다.(?) 와중에 기생체가 숙주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숙주의 연인을 같이 좋아하게 됩니다. 해서 동족을 배신(?)하면서 숙주의 연인을 찾아가게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랍니다. 이 책 읽고는 한동안 또 기생체가 되고 싶다거나 숙주가 되고 싶다거나....( '');;;; 호스트도 시리즈 식으로 2편 3편이 나온다던데.. 언제 나올지;ㅂ;;ㅂ;;ㅂ; 여튼! 스테프니 너무너무 좋아용~>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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